늙고 병드는 몸으로 무엇을 찾을 것인가

2026년 10월 24일

나 자신이 태어남을 면하지 못하는 몸이면서, 어찌하여 똑같이 태어남에 매인 것만을 찾고 있는가? … 차라리 나 자신이 태어남을 면하지 못하는 몸이니, 태어남의 허물을 알고서 태어남이 없는, 더없이 안온한 열반을 찾아 나서면 어떨까? …
맛지마 니까야 26 「거룩한 찾음의 경(Ariyapariyesanā Sutta)」 13절Kiṁ nu kho ahaṁ attanā jātidhammo samāno jātidhammaṁyeva pariyesāmi … Yannūnāhaṁ attanā jātidhammo samāno jātidhamme ādīnavaṁ viditvā ajātaṁ anuttaraṁ yogakkhemaṁ nibbānaṁ pariyeseyyaṁ …

이야기

출처: 맛지마 니까야 26 「거룩한 찾음의 경」 1–18절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왓티(사위성)의 제따 숲(기수), 아나타삔디까(급고독)의 승원에 머무셨다. 여러 비구가 아난다(아난) 존자를 찾아와 말했다. “벗이여, 부처님께 직접 법다운 이야기를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난다(아난) 존자는 그들에게 브라만 람마까의 암자에 가 있으라고 일렀다.

그날 늦은 오후, 목욕을 마치고 몸을 말리시던 부처님께 아난다(아난) 존자가 청했다. “세존이시여, 람마까의 암자가 가까이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가엾이 여기시어 들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말없이 받아들이셨다.

암자에서는 비구들이 모여 앉아 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문밖에 서서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셨다. 이야기가 끝난 것을 아시자 헛기침을 하고 문을 두드리셨다. 비구들이 문을 열자 부처님께서는 안으로 들어가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비구들이여,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며 앉아 있었는가?”

“세존이시여, 바로 세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참에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함께 모였을 때 할 일은 두 가지다. 법다운 이야기를 나누거나, 거룩한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두 가지 찾음에 대해 말씀하셨다. 스스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슬퍼하고 오염되는 몸이면서, 처자식과 재물처럼 똑같이 그러한 것만을 찾는 것은 거룩하지 못한 찾음이다. 그러한 것들의 허물을 알고, 태어남도 늙음도 병듦도 죽음도 슬픔도 오염도 없는, 더없이 안온한 열반을 찾는 것이 거룩한 찾음이다.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당신이 걸어온 길을 들려주셨다.

“비구들이여, 나도 깨닫기 전, 아직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에는, 나 자신이 태어남을 면하지 못하는 몸이면서 똑같이 태어남에 매인 것만을 찾았다. 늙고 병들고 죽고 슬퍼하고 오염되는 몸이면서 그러한 것만을 찾았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 태어남을 면하지 못하는 몸이면서, 어찌하여 똑같이 태어남에 매인 것만을 찾고 있는가? 차라리 나 자신이 태어남을 면하지 못하는 몸이니, 태어남의 허물을 알고서 태어남이 없는, 더없이 안온한 열반을 찾아 나서면 어떨까?’

얼마 뒤, 나는 아직 머리칼이 새까만 젊은이로 한창 젊음을 누리던 때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원치 않으시어 눈물 젖은 얼굴로 우시는데도,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갔다.

출가한 나는 무엇이 선한 것인지 찾고, 더없이 고요한 평화의 자리를 구하며 알라라 깔라마(아라라가란)에게 갔다. 나는 그 법을 금세 외웠고, 입으로 되뇌는 정도로는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알라라 깔라마(아라라가란)는 이 법을 그저 믿음만으로 스스로 뛰어난 앎으로 실현하여 갖추어 지낸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분명 이 법을 알고 보며 지낼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어디까지 실현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라고 답했다.

나는 생각했다. ‘알라라 깔라마(아라라가란)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그에게만 정진과 알아차림과 삼매와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있다.’ 나는 힘써서 그 법을 머지않아 스스로 뛰어난 앎으로 실현하여 갖추어 지냈다.

그러자 알라라 깔라마(아라라가란)가 말했다. ‘벗이여, 그대처럼 거룩한 삶을 함께하는 이를 만나다니 우리는 참으로 복이 많소. 내가 아는 법을 그대도 알고, 그대가 아는 법을 나도 아는구려. 자, 이제 우리 둘이 함께 이 무리를 이끕시다.’ 선생인 그가 문하생인 나를 자신과 같은 자리에 앉히고 크게 기려 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과 고요해짐으로, 뛰어난 앎과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끌지 못한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이다.’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법을 싫어하여 그곳을 떠났다.

나는 다시 웃다까 라마뿟따(울두람불)에게 갔다. 그곳에서도 라마가 이르렀다고 하는 경지,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를 머지않아 스스로 뛰어난 앎으로 실현하여 갖추어 지냈다. 웃다까(울두람불)는 나를 선생의 자리에 앉히며 ‘이제 그대가 이 무리를 이끄시오’ 하고 크게 기렸다. 그러나 이 법도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끌지 못하고 그 경지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이었다. 나는 그 법도 싫어하여 그곳을 떠났다.

나는 더없이 고요한 평화의 자리를 찾아 마가다(마갈타) 땅을 차례로 거닐다가, 우루웰라(울비라)의 세나니가마(사나)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땅과 보기 좋은 숲이 있었고, 물이 맑고 기슭이 고운 강이 흐르고 있었으며, 가까이에 탁발할 마을도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노력하려는 이에게 이만하면 넉넉하다.’ 그래서 나는 바로 그곳에 앉았다.

그리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태어남을 면하지 못하는 몸이면서 태어남의 허물을 알고, 태어남이 없는, 더없이 안온한 열반을 찾았고, 마침내 그것을 얻었다. 늙음도 병듦도 죽음도 슬픔도 오염도 없는, 더없이 안온한 열반을 찾았고, 그것을 얻었다. 그러자 앎과 봄이 내 안에서 일어났다. ‘나의 풀려남은 깨지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풀이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찾으며 산다. 더 많은 재물, 더 좋은 자리, 곁에 둘 사람. 이 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늙고 병들고 죽어 가는 몸이면서 똑같이 늙고 변해 가는 것만을 찾는 일을 분명하게 “거룩하지 못한 찾음”이라고 부르신다. 그렇다고 이 말씀을 사람을 꾸짖는 말로만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당신도 한때 그렇게 찾았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건네는 물음으로도 읽을 수 있다. 변해 가는 것만을 붙잡으려 한다면, 그 찾음은 어디에서 끝나겠는가.

이 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들려주신다. 처음부터 남다른 분이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당신도 한때는 변하는 것만 좇았다고, 그러다 어느 날 그 찾음의 방향을 바꾸었다고 말씀하신다. 깨달음의 길은 그 물음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길은 곧바로 열리지 않았다. 두 수행 집단에서 높은 경지에 이르고 존경까지 받았지만, 부처님께서는 거기에 머물지 않으셨다. 그 경지가 괴로움을 끝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남이 인정해 주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확인한 끝을 찾으셨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강가에 앉아, 찾던 것을 얻으셨다.

우리도 오늘 하루,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볼 수 있다. 그 물음이 거룩한 찾음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교훈

무엇을 얻을지보다 먼저,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살펴보자. 변하는 것만 좇는 삶에서 돌아서는 그 물음이 깨달음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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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 열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불이 꺼진 고요함. 괴로움이 다한 자리다.

  • 보살

    깨달음을 향해 가는 이. 초기 경전에서는 깨닫기 전의 부처님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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